2017년 5월 8일 월요일

4차산업에 대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대선주자 분석

두번째는 4차산업이다. 나름 IT업계 종사자이다보니 어떤 용어(?)가 유행하게 되면 그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여 나름의 정의를 내려놓는 편이다. 그렇다면 4차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이것이다. 지적 생산성의 극대화.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지적(이라 쓰고, 지적 물리성이라 읽는다) 한계를 뛰어넘어 극한의 생산성을 이루어내는 시대, 그러한 혁명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두뇌를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면 그건 그만한 용어가 새롭게 만들어질거라고 본다.)

생산성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이루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그 사람의 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적다. 부의 생산은 혁신을 이루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의 혁신이 없다. 극대화된 생산성을 통해 점점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정규모 이상의 부가 돌아가게 되고, 나머지는 자본주의의 원칙에 따라 손가락을 빨게 된다. 이러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암울한 미래사회의 단면이 상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현대 사회의 부는 현대 이전의 부라는 개념과 단위가 많이 다르다. 가장 부자인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인류 역사상 가장 극대화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의 폭발적인 증가. 빈부격차의 퍼센테이지는 과거나 현재나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규모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인구가 많다. 즉, 부를 만들어낼 자원이 과거와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의 딜레마는 여기서 온다. 빈곤한 인구가 늘어나면 부의 사이즈도 줄어든다. 아무리 인공지능으로 재화의 생산을 혁신한다고 해도 결국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시장이 움직일 것이다. 뭐 이건 아주 나중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인구도 줄어들 것이다. 적정한 수준으로. 어떤 방법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잠시 산으로 갔는데. 대선주자들의 인식을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먼저 IT업계의 신화. 안철수씨를 보자면, 이 분의 인식은 조금 오묘한 감이 있다. 마치 엔지니어 출신 사장님(약간 안좋은 쪽으로)을 보는 느낌이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그냥 이야기처럼 풀어보자면, 이렇다.

엔지니어가 있다. 성공했다. 일찍 리더의 반열에 오른다. 본업과는 점점 멀어진다. 열정은 살아있으나, 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리더란 큰 그림을 봐야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감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던 도중 무언가 일이 안된다. 왜 안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감을 살리는 방법 밖에 없는데, 바쁘기도 하고 감을 살리기엔 뭔가 너무 와버렸다. 대신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문제해결을 독려한다. 하지만 부하직원들에게는 원론적인 해결책 밖에 되질 않는다. 일이 잘되면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안되면 경험은 한순간에 전달될 수 없는거라 생각한다.

사실 좋은 리더란, 자신의 한계를 아는 리더이다. 누구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다른 후보들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한다. 만약 안철수씨가 우리 공돌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자 했거나, 아니면 아직도 감이 살아있었다면 원론적인 해법은 물론이거니와 좀 더 겸손한 자세를 견지했어야 한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은 내가 제일 잘 알아가 아닌, 나도 좀 알지만 그래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정확하게 보지 않겠어? 라는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되려 그 부분은 유승민씨가 가장 잘 어필했다고 볼 수 있다. 중소기업 종사자들을 주기적으로 만나보겠다는 이야기를 강조한 것이 그것인데, 방법만 괜찮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목적을 상회하는 성과를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문재인씨는 역시 안철수씨와 비슷하다. 이 분 역시 좀 큰그림을 보고 계신거 같다. (그래서 구체성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시장의 변화를 빠르게 캐치해낼 수 있는 참모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하겠다)

다음으로는 심상정씨이다. 이 분은 역시 노동전문가 답게 노동적인 측면에서 4차산업혁명을 접근하였다. 사실 우리나라에 굉장히 필요한 시각이다.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을 인간의 힘으로 만드는게 4차 산업 종사자들인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실 인간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최소 예술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예술에 버금가는 기술도 나올 수 있다. 골방에 쳐박힌 미친 천재가 만드는 기술은 그 천재가 일을 해서 만든게 아니라 놀이를 통해 만든거다. 심상정씨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4차 산업에 관한 우리나라에 필요한 해법은 어쩌면 노동운동을 통해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 이거 굉장히 합리적이고 신선했다.

더군다나 심상정씨의 놀라운 시각(사실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선 놀라울 수도 있는)은 이게 끝이 아닌데, 이건 무상소득(?)과 관련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의 종착역은 부의 감소, 인류의 감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상소득은 합리적인, 최소한 실험해볼 가치는 차고 넘치는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무상소득은 빈부의 격차는 어느정도 유지하되, 최소한의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보면 된다. 진보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시각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래나저래나 같은 이야기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걸 이재명씨처럼 세금이 남아서 시행하는 정책이 아닌 4차산업혁명과 결부시켜 이야기했다는 것은 심상정씨가 기본적으로 이 바닥에 개념이 잡혀있는 정치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끝으로... 유승민씨를 보자면, 그는 매우 현실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발언들의 수준이나 규모가 대단치는 않다. 그 쪽이 자신의 포커스가 아닌 것이다. 대선주자로서 나한테 표를 많이 주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가는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없지야 않겠지만 약한건 사실이다)

홍준표씨는 넘어가자. 이 분의 무지는 거론할 가치가 없다.

사드배치를 통해 바라본 대선주자 분석

첫번째로 '사드' 이슈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각 유력대선주자들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강력한 잣대가 된다고 믿는다.) 사드는 미군이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과 우방국의 방어를 위해 우리의 영토에 설치하고자 하는 미사일 방어체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드는 우리의 국방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가 방어하고자 하는 미사일은 북한이 콕 찝어서 우리나라에 모든 병력을 쏟아부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올 일이 없는 미사일 들이다. (심지어 장거리 미사일을 우리 영토에 쏘겠다고 개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쏘기도 어렵다.) 만약에 전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유승민씨와 홍준표씨가 이를 몰랐다고 하면 그건 직무유기를 했거나 잘못된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나는 근데 홍준표씨(아무것도 모르는)를 제외하고, 유승민씨가 이걸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TV 토론회 때도 간혹 의도한 것인지, 실수인지 그 정도는 자신도 알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한 발의 미사일이라도 방어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 유승민

그런데, 그 한발의 미사일을 막기 위한 평시의 손해가 너무도 막심하다. 그리고 꼭 그렇게 막을 필요도 없고 이미 준비되거나 계획된 다른 방법도 많다. 이걸 유승민씨가 모르고 있었다면 너무나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그 분의 속마음은 "사드배치를 진행함으로서 자신에게 오는 이익을 무시할 수 없어서."인 듯 하다.

그럼 문재인씨와 심상정씨를 보자. 일단 심상정씨는 사드는 무조건 반대 입장이다. 어찌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선택이다. "사드 잘 모른다. 근데 사드놓는다고 하면 해당 지역주민들이 비슷한 이유로 다 싫어하네? 그럼 반대!" 어찌보면 이게 가장 합리적인 사고이며, 평범한 사고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서 다소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긴 하다. 무조건이라는 상대가 있는 경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훨씬 많이 전달하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씨는 북한의 추가도발이 있을 경우 사드배치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이걸두고 유승민씨는 말을 바꾼다고 공격했다.(비겁하게도) 하지만 이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어차피 사드는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 다만, 외교적 카드로는 그 역할이 상당하다.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인데 그럼 중국을 압박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다. 유승민씨의 논리처럼 단 한발이라도 막을 수 있는 사드가 우리 국방에 도움이 되긴 하니(물론 가성비가 극악이지만) 북한이 자꾸 도발하는데 우리가 막을 이유가 없지않아? 라고 중국에 묻는다면 중국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자. 근데 여기서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지금처럼 우리가 미국에게 호구노릇만 해서는 중국에게 아무런 카드도 내밀 수 없다. 사드배치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럴 권한이 있었다. 사드는 성주군에 배치되고 그건 우리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김관진 국방장관(이 매국노새끼는)은 일사천리로 미군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사드와 관련된 꽃놀이패들을 모두 4대강에 집어넣은 꼴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재인씨의 사드배치에 관한 대응책은 그나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첫번째로 최소한 중국에게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돌아가는 머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고, 북한의 대규모 군사도발을 지연시키거나 막을 수 있다면 그 만큼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안철수씨를 보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안철수씨는 사드문제를 자기 손을 떠난 문제로 보는 시각이 크다. 그래서 솔직히 생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증적 대응으로 사드문제를 넘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안보는.
안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유권자들의 투표기준 중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안보문제 중 가장 핫한 사드문제로 보건데, 문재인씨가 가장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후보들은 안보의식이 매우 퇴행적이다.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안보관은 되려 진보성향의 후보들에게서 보여진다. 통합이라 쓰고, 중도라 읽는 안철수씨의 행보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전쟁이 나는가 안나는가의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정치무관심층에게 가장 잘 먹히는 안보관은 대증적, 유행적 안보관이 아닌가 싶다. 그럼 우리 유권자가 가져야 하는 안보관은 무엇인가? 정답은 없겠지만 최소한 일관성있는 안보관이 갈지자 안보관보다 백배 낫다.

뱀발.
홍준표씨는 어디가서 보수라고 하지 말자. 당신의 무식함으로 인해 한국적 보수층의 이미지가 이만저만 추락하는게 아니다.

대선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대선주자 분석

2017년 대한민국의 19대 대선의 날이 밝았다. 기적같은 정권교체의 기회가 찾아온지도 벌써 2달이 흘렀다. 우리는 너무도 익숙한 대선주자들의 선거운동을 접했고, 너무도 당연한 듯 투표장으로 걸어갔고, 걸어갈 것이다.

내가 지금에서야 대선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이유는, 나의 생각이 다른 다양한 생각들을 섣불리 억누르고 가리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후보는 대선레이스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확실했기 때문에 후보를 고르고자 함이 이유는 아니다. 다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있다고 해서 타 후보의 정책이나 사상에 대해 최대한의 편견이 없도록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맞을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말이 가지는 힘을 직시하거나 견뎌내야할 상황을 많이 만난다. 누군가의 말이, 혹은 내가 한 말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 작지 않다. 그리고 그건 특정 몇몇 집단이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갈 수록에 말을 조심하게 되거나, 말수가 줄거나, 아니면 요새 유행하는 '아무말 대잔치'처럼 속마음은 감춘 채 별 영양가 없는 말이 늘어나기도 한다.

정치인은 스스로 신뢰로 먹고 산다고 이야기한다. 한번 이야기한 것은 반드시 지킬 줄 아는 소신과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덕을 가지고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특징들이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그 어떤 사람이 저렇게 살 수 있는지. 행여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나라 사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의 좀 흥미로운 부분은 TV토론회였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시기를 거치면서 불통과 독선에 지친 국민들을 위해 대부분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준비한 기술은 바로 '논리성'이었다고 본다. 물론 홍준표와 같이 스스로 지역감정이나 특정 계층의 정서에 기댄 '막대기'를 자처한 분들 빼고는 나름의 논리성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물론 그 논리성이라는게 정말 논리적으로 우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들이 앞서 말한 믿을만한 정치인인지를 앞세우기 위해 나름의 논리성으로 무장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럼 내가 나름 잘 알고 있는 몇가지 이슈를 가지고 각 대선주자들의 논리성(?)과 그 것이 실제로 어떻게 대선판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선주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사드배치를 통해 바라본 대선주자 분석




아 힘들다. 역시 뻘글은 힘들다. 돈도 안되고.
더 쓸 이야기는 있는데 못쓰겠다.
관련해서 다음에 쓸만한 이야기는...

- 일자리창출 대책을 통해 바라본 대선주자 분석
- 사람은 살아온 시간으로 말한다.

뭐 대충 이정도 있을 것 같은데... 못쓸 것 같다.

2017년 1월 17일 화요일

바다의 시

2001년, 여름인지 겨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밤이 긴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럼 아마도 겨울이겠지. 넘치는 감성 탓일까. 시를 적는게 취미였다. 그리고 그 시를 모두 옮겨 HTML 페이지로 꾸미고, 동아리서버에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글들을 보며, 다시금 추억에 잠겨본다. 그리고 낭만이라는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감정인지 새삼 깨닫는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데 98년의 나는 지금의 모습을 어떻게 보아줄런지.

예전같으면 조금 더 호기를 부려 메모장에 알 수 없는 글들을 끄적여보겠지만, 지금은 AM 1:30... 자야된다. 이미 늦었다. 네가 낭만을 다시 떠올리기에는.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내 삶의 모든 것이 느려진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갈 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고들 한다. 그러한 느낌은 나 역시 그러한데, 이는 거꾸로 내 삶의 모든 것이 점점 더디게 진행되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프로젝트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곤 한다. 그리고 원래의 내 모습을 되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본래 추구하고자 했던 많은 것들의 기억을 되살리는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서 내가 취해야 했던 많은 선택들은 (결국 그것들 또한 나의 일부임에도)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들이 쌓여갈 수록 프로젝트의 막바지에는 나도 모르게 자신을 어딘가로 밀어부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건강한 신체에는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한다. '건강한' 이란 정의에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집중력이라는 것만 놓고보면 건강한 신체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내가 내 모습을 잃어버리곤 하는 가장 큰 원인은 피폐해져버린 신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급박한 프로젝트 내에서 생존의 방어기제가 자동으로 작동하는 탓? 이라고 하면 정확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만 하는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역시 건강함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지만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살짝 틀어서 생각해보면 결국 해야만 하는 것들이 남는데 균형을 찾는다는게 결국 이 해야만 하는 것을 얼마나 제대로, 많이 할 수 있는가를 조정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급히 늙어가는 신체를 보며 약간은 조바심을 느낀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시간이 가지는 가치의 인플레이션은 좋지 않다. 매우.

좀 더 건강해져야될 시간이다. 건강에 대해 주저말고 투자해야될 때이다.

2016년 6월 23일 목요일

이틀간의 휴가

마누라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에 2박3일 다녀왔다. 난 그 이틀동안 술독에 빠져살았다고 하는게 적당할 것 같다. 근데 이게 진짜로 여유롭다는게... 그렇게 늦잠자고 심지어 집청소에 빨래까지 했는데도 시간이 남는다. 뭔가 이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래, 오늘만큼은 돈위에서 해엄친 기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여튼, 그렇게 뭔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내 스스로가 좀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하루에 5시간도 못자고, 12시간씩 일하고, 수면제 삼아 맥주 두캔 마시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참 기계적인 삶... 앞날도 까마득한게 하루하루 일로 불안감을 애써 지우며 살았던거 같다.